인플루언서마케팅을 맡고 팔로워를 덜 본 이유

얼마 전 한 브랜드의 협업 후보 명단을 봤는데, 첫 장부터 팔로워 수가 큰 순서로 줄을 서 있더군요. 숫자는 보기 편합니다. 그런데 12년 동안 브랜드 일을 하며 더 자주 본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조회 수가 높았던 게시물은 금세 잊혀도, 그 사람이 한 말과 실제 제품 경험이 어긋난 순간은 오래 남습니다. 인플루언서마케팅에서 빌리는 건 계정의 도달 범위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쌓아온 신뢰의 일부입니다.
팔로워보다 먼저 봐야 할 약속
브랜드는 제품을 팔기 전에 암묵적인 약속을 합니다. 운동복이라면 움직일 때 편하겠다는 약속, 커피라면 매일 들르기 좋겠다는 약속이죠. 협업 상대가 그 약속을 자기 일상에서 보여줄 수 있을 때 광고는 덜 낯섭니다.
짐샤크의 출발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짐샤크가 공개한 창업 이야기에는 초기에 좋아하던 운동선수들에게 제품을 보냈고, 그들이 2013년 피트니스 행사에서 제품을 입고 커뮤니티와 만났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지금도 짐샤크는 파트너를 고를 때 팔로워 수의 기준선보다 콘텐츠와 브랜드의 궁합, 커뮤니티의 실제 참여를 본다고 설명합니다. 운동하는 사람이 운동복을 입고 운동하는 장면.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강합니다. 물론 그 성장을 협업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제품, 유통, 피트니스 문화의 흐름도 함께 맞아떨어졌습니다.
던킨은 이미 있던 습관을 메뉴로 만들었다
던킨과 찰리 다멜리오의 협업은 순서가 좋았습니다. 2020년 던킨은 찰리가 즐겨 마시던 콜드브루 주문을 ‘더 찰리’라는 메뉴로 내놓았습니다. 던킨의 발표에 따르면 우유와 캐러멜 스월 세 번이 들어간 주문이었죠. 광고를 위해 갑자기 만들어낸 취향처럼 보이지 않도록, 이미 팬들이 알고 있던 습관을 매장에서 살 수 있는 경험으로 옮긴 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유명인의 얼굴을 붙였다는 사실보다 고객이 그 이야기에 참여할 자리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팬은 찰리의 음료를 직접 주문할 수 있었고, 던킨은 평소 즐겨 찾는 커피 브랜드라는 인상을 구체적인 메뉴로 보여줬습니다. 다만 이 사례를 복사해 유명인의 ‘최애 메뉴’를 만들면 같은 반응이 나온다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래 쌓인 사용 장면과 팬들의 관심, 출시 시점이 맞았다는 운도 있었습니다.
파이어 페스티벌이 보여준 위험
반대쪽에는 2017년 파이어 페스티벌이 있습니다. 화려한 홍보가 약속한 고급 음악 축제는 실제 운영과 크게 달랐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이후 창업자가 축제 사업을 포함한 회사들에 관해 투자자들을 속였다고 발표했습니다. 소비자에게 보여준 이미지와 사업의 실체 사이에 깊은 틈이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죠.
이 실패를 인플루언서 탓으로만 돌리면 중요한 의사결정을 놓칩니다. 전달력이 큰 사람을 모으기 전에 숙박, 식사, 공연처럼 브랜드가 약속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 확인했어야 합니다. 홍보는 관심을 앞당길 수 있지만 준비 시간까지 벌어주지는 못합니다. 협업이 잘될수록 기대가 빨리 커지고, 지키지 못한 약속의 피해도 커집니다.
게시물 한 건의 성적표로는 부족하다
실무에서는 조회 수와 판매 코드를 당연히 봅니다. 다만 숫자의 뜻을 구분해야 합니다. 가령 협업비 1,000만 원으로 매출 2,000만 원이 잡혔다고 해도 곧바로 성공이라고 쓰기는 어렵습니다. 원가와 할인액을 빼야 하고, 원래 구매하려던 고객이 코드를 썼을 수도 있으니까요. 반대로 게시물 직후 구매가 적어도 제품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이 몇 주 뒤 매장에서 살 수 있습니다. 이 숫자는 설명을 위한 예시이지 특정 캠페인의 실적은 아닙니다.
저라면 협업 전에 세 가지를 함께 적어둡니다. 이 사람이 평소 제품을 쓸 이유가 있는지, 게시물을 본 사람이 매장에서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지, 판매 외에 어떤 반응이 브랜드의 약속을 뒷받침하는지입니다. 댓글에 나온 기대와 불만, 재구매, 검색량을 함께 보면 게시물의 성적표가 조금 더 입체적이 됩니다. 광고나 제품 제공 사실도 알아보기 쉽게 밝혀야 합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가 협찬 관계를 분명히 표시하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결국 신뢰와 닿아 있습니다.
인플루언서마케팅은 다른 사람의 입으로 브랜드의 약속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계약서의 노출 횟수보다 그 사람이 제품을 써본 뒤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를 먼저 묻습니다. 오래 남는 캠페인은 대개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