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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브랜드가 도시로 내려왔을 때 벌어진 진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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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브랜드가 도시로 내려왔을 때 벌어진 진짜 이야기

요즘 산보다 지하철에서 더 자주 보이는 옷

얼마 전 출근길 지하철에서 검은 바람막이를 입은 사람들을 세어본 적이 있습니다. 한 칸에만 10명 가까이 있었고, 그중 절반은 등산화가 아니라 운동화나 로퍼를 신고 있었죠. 이 장면이 꽤 상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아웃도어브랜드는 더 이상 산에만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시의 아침, 카페 앞 대기줄, 주말 백화점 팝업에서 더 자주 보입니다.

브랜드 마케팅을 오래 보다 보면 어떤 카테고리는 제품보다 약속이 먼저 보입니다. 아웃도어브랜드가 소비자에게 해온 약속은 단순했습니다. 춥지 않게 해주겠다. 젖지 않게 해주겠다. 오래 버티게 해주겠다. 그런데 요즘 소비자는 여기에 하나를 더 붙입니다. ‘그렇게 보이게 해달라’는 약속입니다.

기능의 시대에서 스타일의 시대로 이동했다는 말은 너무 쉽습니다. 실제로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기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기능만으로는 선택받기 어려워졌습니다. 소비자는 30만 원짜리 재킷을 사면서 방수 투습 수치만 보지 않습니다. 출근복 위에 걸쳤을 때 어색하지 않은지, 주말 캠핑 사진에 잘 나오는지, 그리고 그 브랜드를 입은 내가 어떤 사람처럼 보이는지를 같이 삽니다.

한때 등산복은 부모님 옷이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졌습니다. 업계 자료마다 차이는 있지만, 2014년 전후 국내 아웃도어 시장 규모는 약 7조 원 안팎까지 거론될 정도였습니다. 당시 매장에 가보면 산에 가지 않는 사람도 고어텍스 재킷을 샀고, 중고등학생은 패딩 로고로 서로를 구분했습니다.

그 시절 아웃도어브랜드의 문법은 명확했습니다. 더 높은 산, 더 강한 바람, 더 극한의 환경. 광고에는 히말라야와 설원이 자주 등장했고 모델은 정상에 서 있었습니다. 소비자는 실제로 그 산에 가지 않더라도, 그 이미지가 주는 신뢰를 샀습니다. 브랜드가 하는 약속은 ‘당신을 자연 앞에서 보호하겠다’였습니다.

문제는 그 약속이 너무 많이 팔렸다는 데 있었습니다. 시장이 커질수록 브랜드는 비슷한 제품을 비슷한 가격에 내놓았습니다. 로고만 다르고 메시지는 거의 같았습니다. 매장은 늘었고 할인도 늘었습니다. 소비자는 어느 순간 깨닫습니다. ‘이 재킷이 꼭 산에 필요해서 산 게 아니었구나.’ 그때부터 아웃도어는 기능복이면서 동시에 유행복이 됐고, 유행복이 된 순간 낡는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살아남은 브랜드는 산을 버리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진짜 강한 아웃도어브랜드들이 도시로 내려오면서도 산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파타고니아는 대표적입니다. 이 브랜드는 플리스와 재킷을 팔지만, 동시에 환경 보호와 수선 문화를 꾸준히 말합니다. ‘이 옷을 사라’보다 ‘오래 입어라’에 가까운 메시지를 반복해왔죠. 상식적으로는 판매를 줄이는 말처럼 들리지만, 브랜드 약속의 밀도를 높이는 데는 굉장히 강력했습니다.

노스페이스도 흥미로운 케이스입니다. 국내에서는 한때 학생 패딩 이미지가 너무 강해졌고, 그게 브랜드에 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브랜드는 탐험, 기술, 글로벌 스포츠 컬처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퍼플라벨이나 다양한 협업 라인처럼 도시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를 만들면서도, 근본 이미지는 ‘탐험’ 쪽에 붙잡아두려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생깁니다. 어떤 브랜드는 도시로 내려오며 그냥 캐주얼 브랜드가 됩니다. 반면 어떤 브랜드는 도시에서도 산의 냄새를 잃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이 차이를 생각보다 예민하게 봅니다. 재킷 하나는 비슷해 보여도, 브랜드가 오랫동안 쌓아온 태도는 쉽게 복제되지 않습니다.

성공한 협업 뒤에는 운도 있었다

요즘 아웃도어브랜드가 젊어진 이유를 협업 때문이라고만 말하면 절반만 맞습니다. 슈프림, 팔라스, 빔즈, 하이크 같은 스트리트와 패션 신(scene)이 아웃도어를 다시 꺼내 올린 건 맞습니다. 그런데 협업은 만능키가 아닙니다. 로고를 나란히 붙인다고 브랜드가 젊어지는 건 아닙니다.

성공한 협업에는 보통 세 가지가 맞아떨어집니다. 첫째, 원래 브랜드에 믿을 만한 기술 서사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협업 상대가 그 서사를 망가뜨리지 않고 다른 문맥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셋째, 시장의 공기가 맞아야 합니다. 코로나 이후 캠핑, 트레일, 러닝, 하이킹이 생활 취미로 커진 흐름은 아웃도어브랜드에 꽤 큰 순풍이었습니다.

  • 기능성: 방수, 보온, 경량 같은 실질 가치
  • 상징성: 자연, 탐험, 생존, 지속가능성 같은 이미지
  • 착용성: 도시 일상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실루엣
  • 커뮤니티: 캠핑, 러닝, 클라이밍처럼 함께 소비되는 문화

이 네 가지가 동시에 맞으면 브랜드는 갑자기 오래된 브랜드가 아니라 ‘지금 필요한 브랜드’처럼 보입니다. 반대로 하나라도 어긋나면 비싼 바람막이만 남습니다. 솔직히 소비자는 냉정합니다. 스토리는 좋아해도, 핏이 이상하면 안 삽니다. 기술이 좋아도, 너무 등산복 같으면 망설입니다.

아웃도어브랜드가 무너질 때 보이는 신호

브랜드가 흔들릴 때는 매출보다 먼저 말투가 바뀝니다. 예전에는 ‘우리는 이런 환경을 견딥니다’라고 말하던 브랜드가 어느 순간 ‘이번 시즌 트렌드 컬러’만 말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컬러와 디자인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웃도어브랜드가 그것만 말하면 뿌리가 얕아 보입니다.

또 하나의 신호는 할인입니다. 아웃도어 제품은 단가가 높고 시즌성이 강합니다. 재고 압박이 오면 할인 유혹이 큽니다. 그런데 할인이 반복되면 소비자는 정가를 믿지 않습니다. 49만 원 재킷이 매년 29만 원이 되는 걸 보면, 다음에는 49만 원에 사지 않죠. 단기 매출은 버틸 수 있어도 브랜드의 가격 약속은 조금씩 금이 갑니다.

가장 위험한 건 자기 고객을 잃는 겁니다. 산을 타던 사람에게는 너무 패션처럼 보이고, 패션 소비자에게는 너무 기능복처럼 보이는 상태. 이 애매한 중간지대에 빠지면 브랜드는 누구에게도 선명하지 않습니다. 시장이 좋을 때는 티가 덜 나지만, 유행이 식으면 바로 드러납니다.

도시에 온 산, 그 다음 약속

제가 보는 좋은 아웃도어브랜드는 ‘산에서도 입을 수 있는 도시복’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설득되는 산의 태도’를 가진 브랜드입니다. 그 차이는 작아 보여도 꽤 큽니다. 전자는 디자인의 문제에 가깝고, 후자는 브랜드 철학과 운영의 문제입니다.

앞으로 아웃도어브랜드의 경쟁은 더 세밀해질 겁니다. 단순히 고기능을 말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소비자는 이미 충분히 똑똑하고, 제품 리뷰도 많고, 대체재도 넘칩니다. 결국 브랜드는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왜 이 옷을 만들어야 하는가. 이 옷을 입은 사람은 어떤 선택을 했다고 느끼는가.

개인적으로는 아웃도어브랜드의 미래가 꽤 흥미롭다고 봅니다. 자연을 말하지만 도시에 팔아야 하고, 기능을 말하지만 감각으로 선택받아야 하며, 오래 입으라 말하면서도 계속 새로워 보여야 합니다. 이 모순을 잘 다루는 브랜드는 오래 갑니다. 반대로 이 모순을 대충 유행으로 덮는 브랜드는 생각보다 빨리 희미해집니다.

아웃도어브랜드가 도시로 내려왔을 때 벌어진 진짜 이야기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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