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코스 비브가 한국에 들어온 날, 필립모리스의 약속은 또 바뀌었다

얼마 전 편의점 담배 진열대를 보다가 묘한 장면을 봤습니다. 예전에는 말보로, 팔리아먼트 같은 궐련 브랜드가 앞줄을 차지했는데, 이제는 기기와 전용 스틱, 액상 팟이 함께 놓입니다. 담배 회사가 더 이상 담배만 파는 회사처럼 보이지 않는 순간이죠. 아이코스 비브는 그 변화의 꽤 상징적인 제품입니다.
아이코스 비브를 단순히 ‘필립모리스가 액상형 전자담배도 냈다’ 정도로 보면 재미가 없습니다. 브랜드 관점에서 보면 이 제품은 필립모리스가 지난 10년 가까이 밀어온 약속, 즉 ‘연소 없는 미래’라는 말을 한국 시장에서 한 번 더 확장하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약속이 커질수록 검증받아야 할 것도 많아집니다.
아이코스가 만든 첫 번째 약속
한국에서 아이코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2017년이었습니다. 당시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태우지 않고 가열한다. 냄새가 덜하다. 재가 없다. 기존 흡연자에게 다른 선택지를 준다. 이 네 가지가 아이코스 브랜드의 초반 성장 엔진이었습니다.
브랜드가 시장을 바꿀 때는 기술보다 ‘생활 장면’이 먼저 움직입니다. 아이코스는 흡연을 건강한 행위로 만든 게 아니라, 흡연 후 주변 사람의 반응과 공간의 불편함을 줄이는 쪽으로 설계된 브랜드였습니다. 그래서 사무실 근처 흡연 구역, 회식 후 골목, 차량 안 같은 장면에서 빠르게 퍼졌습니다. 소비자가 산 건 기기라기보다 ‘덜 민망한 흡연 경험’이었죠.
필립모리스 입장에서도 아이코스는 매우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기존 담배 회사의 매출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미래 규제와 소비자 인식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브랜드 자산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코스는 제품이면서 동시에 기업 평판을 다시 쓰는 도구였습니다.
비브는 왜 지금 들어왔을까
한국필립모리스는 2026년 8월 아이코스 비브 계열의 액상형 전자담배 비브를 국내에 선보였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은 2026년 2분기 기준 전체 순매출의 약 42%를 비연소 제품에서 냈고, 2030년까지 그 비중을 3분의 2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말했습니다. 숫자만 보면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시장은 쉽지 않습니다. 궐련형 전자담배에서는 아이코스가 강한 브랜드 인지도를 쌓았지만, 비연소 시장 전체로 보면 KT&G 같은 국내 사업자의 존재감도 큽니다. 특히 한국 소비자는 기기 전환에는 빠르지만, 맛과 가격, 구매 편의성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브랜드가 멋있다고 계속 쓰는 시장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비브의 역할은 그래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이코스가 만든 ‘태우지 않는 선택지’의 범위를 넓히는 것. 다른 하나는 액상형 전자담배 카테고리 안에서도 폐쇄형 팟 시스템과 검증된 원료라는 메시지로 질서 있는 이미지를 가져가는 것. 브랜드 언어로 말하면, 비브는 자유분방한 베이프 문화보다 관리된 프리미엄 경험 쪽에 서 있습니다.
브랜드의 강점은 아이코스 이름값, 약점도 아이코스 이름값
아이코스 비브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출발선입니다. 대부분의 신규 액상형 브랜드는 신뢰를 처음부터 쌓아야 하지만, 비브는 아이코스 매장, 멤버십, 고객 서비스, 기기 관리 경험을 등에 업고 들어옵니다. 브랜드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큰 자산인지 압니다. 고객이 처음 만지는 순간부터 낯섦이 줄어듭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부담이기도 합니다. 아이코스라는 이름에는 이미 소비자 기대가 붙어 있습니다. 기기는 세련돼야 하고, 팟 교체는 쉬워야 하고, 맛은 일정해야 하고, 누수나 배터리 이슈는 적어야 합니다. 액상형 제품에서 작은 불편은 생각보다 빨리 이탈로 이어집니다. 담배는 습관 상품이지만, 기기형 담배는 습관과 기기 만족이 같이 굴러가야 합니다.
- 아이코스의 기존 강점: 프리미엄 기기 이미지, 전용 매장 경험, 성인 흡연자 대상 전환 메시지
- 비브가 새로 증명해야 할 점: 액상 맛의 지속성, 팟 품질, 가격 수용성, 재구매 동선
- 브랜드 리스크: 비연소 메시지가 ‘덜 해롭다’는 식의 과도한 인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
‘연소 없는 미래’라는 말의 무게
필립모리스는 오래전부터 일반 담배를 줄이고 비연소 제품으로 옮겨가겠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왔습니다. 마케팅 기획자 입장에서 이 문장은 굉장히 강력합니다. 기업의 과거와 미래를 한 문장으로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담배 회사가 담배의 미래를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동시에 흡연자와의 관계는 놓지 않는 구조입니다.
다만 이 약속은 늘 조심스럽게 읽어야 합니다. 비연소 제품은 태우는 방식과 다르지만, 니코틴 제품이라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성인 흡연자에게 대체 선택지를 제안하는 것과, 비흡연자에게 새로운 진입로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이 경계를 흐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아이코스 비브의 마케팅은 화려한 캠페인보다 운영의 정확도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누가 써야 하는 제품인지, 어떤 상황에서 대체재가 되는지, 어떤 표현은 피해야 하는지. 이런 디테일이 쌓여야 ‘책임 있는 전환’이라는 브랜드 약속이 힘을 얻습니다.
비브가 성공하려면 멋보다 반복 구매가 먼저다
브랜드 론칭 현장을 오래 보면 초반 반응은 생각보다 믿을 게 못 됩니다. 신제품은 늘 궁금증을 만듭니다. 문제는 3개월 뒤입니다. 첫 구매자가 두 번째 팟을 사는지, 기기를 계속 충전하는지, 기존 아이코스 사용자와 액상형 사용자 중 누가 남는지에서 진짜 성적표가 나옵니다.
아이코스 비브가 한국에서 의미 있는 브랜드가 되려면 ‘필립모리스가 액상형도 냈다’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아이코스가 궐련형 전자담배의 사용 습관을 만들었던 것처럼, 비브도 자기만의 반복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맛의 취향, 기기의 안정감, 매장의 상담 경험, 팟 구매의 편의성이 하나의 루틴으로 묶여야 합니다.
솔직히 저는 비브의 관전 포인트가 제품 자체보다 브랜드 포트폴리오에 있다고 봅니다. 말보로로 성장한 회사가 아이코스로 방향을 틀었고, 이제 비브로 또 다른 비연소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이 변화가 진짜 전환인지, 아니면 규제와 시장 흐름에 맞춘 영리한 방어인지 아직 단정하긴 이릅니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 있습니다. 브랜드의 약속은 광고 문구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매주 다시 집어 드는 순간, 그때 비로소 약속이 조금씩 현실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