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고래잇 9월, 할인 행사인 줄 알았는데 브랜드 약속의 시험대였다

얼마 전 장을 보러 이마트에 갔다가 ‘고래잇’이라는 이름을 다시 봤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귀여운 말장난 정도로 지나쳤어요. 그런데 9월 고래잇 페스타의 상품 구성을 보니, 이건 단순한 할인전이라기보다 이마트가 지금 고객에게 다시 꺼내 든 약속에 가까웠습니다.
브랜드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캠페인의 진짜 의도는 카피보다 행사 구조에서 더 잘 보입니다. 무엇을 싸게 파는지, 언제 시작하는지, 어떤 상품을 앞에 세우는지 보면 그 브랜드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회복하려는지 보이거든요.
고래잇은 왜 9월에 더 민감한 캠페인이 됐나
9월은 대형마트 입장에서 애매하지만 중요한 달입니다. 여름 휴가 소비는 끝났고, 추석과 가을 장바구니 소비가 시작됩니다. 아이들 개학, 제철 먹거리, 생활용품 보충, 가전 교체 수요까지 겹치죠. 이마트가 9월 고래잇 페스타를 ‘가을할인 대작전’ 콘셉트로 잡은 건 그래서 꽤 현실적인 판단입니다.
신세계그룹 뉴스룸에 공개된 2025년 9월 고래잇 페스타는 9월 4일부터 7일까지 4일간 진행됐습니다. 신선식품, 가공식품, 생활용품, 가전까지 폭을 넓혔고, 이마트는 앞선 7번의 고래잇 페스타 기간 동안 매출과 방문 고객 수가 모두 두 자릿수 신장했다고 밝혔습니다. 숫자만 보면 성공한 행사입니다. 그런데 브랜드 관점에서 더 중요한 건 ‘왜 이 행사가 먹혔느냐’입니다.
가격 할인보다 중요한 건 ‘필요한 걸 싸게’라는 감각
대형마트 할인 행사는 늘 있었습니다. 문제는 고객이 그 할인을 진짜 혜택으로 느끼느냐입니다. 50%라는 숫자가 커 보여도, 평소에 사지 않는 상품이면 체감은 약합니다. 반대로 계란, 과일, 삼겹살, 두부, 세제처럼 집에서 계속 쓰는 품목이 싸지면 고객은 바로 반응합니다.
9월 고래잇 페스타가 흥미로운 지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샤인머스캣 1.5kg을 신세계포인트 적립 시 1만1940원에, 하우스 감귤 1.4kg을 9900원에 내세운 건 단순한 미끼 상품이 아닙니다. 가을 장바구니에서 ‘살까 말까’ 망설이는 품목을 전면에 둔 겁니다. 여기에 만두, 두부, 시리얼, 치즈, 식용유, 컵밥, 냉동피자, 세제, 치약, 바디워시, 기저귀 같은 품목을 반값 수준으로 붙였습니다.
브랜드의 약속은 거창한 문장보다 반복 구매에서 검증됩니다. 고객이 계산대 앞에서 “오늘은 꽤 잘 샀다”고 느끼면, 그 경험이 다음 방문의 이유가 됩니다. 이마트가 고래잇을 통해 노린 것도 바로 그 감각입니다.
목요일 시작은 작은 변경 같지만 꽤 큰 메시지다
이마트는 9월 고래잇 페스타부터 행사 시작 요일을 금요일에서 목요일로 바꿨습니다. 이 부분은 마케팅 기획자 입장에서 꽤 눈에 들어옵니다. 주말 특가를 금·토·일 3일로 보던 고객 경험을 목·금·토·일 4일로 넓힌 셈이니까요.
할인 행사는 ‘언제 가야 손해 보지 않을까’라는 피로를 만들기 쉽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이미 인기 상품이 빠졌다는 경험이 반복되면 고객은 행사 자체를 불신합니다. 목요일 시작은 하루를 더 주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너무 늦게 오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입니다.
신세계그룹 뉴스룸은 금요일 연차 사용 비중이 높아진 직장인 흐름도 언급했습니다. 시프티의 2025 직장인 휴가 동향 발표 기준으로 금요일 연차 비중이 25.6%였다는 점을 행사 설계에 연결한 겁니다. 이런 디테일은 캠페인이 책상 위에서만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인상을 줍니다.
고래잇의 강점과 위험은 같은 곳에 있다
고래잇의 강점은 이름이 쉽고, 혜택이 직관적이고, 상품 구성이 넓다는 점입니다. 고객이 복잡하게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마트가 크게 할인하는 기간”이라는 기억만 남아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위험도 있습니다. 할인 캠페인은 반복될수록 기준선이 됩니다. 고객은 다음 달에도 비슷한 가격을 기대하고, 정상가 구매를 미룹니다. 브랜드가 가격으로만 기억되면, 장기적으로는 매장의 선도, 상품 큐레이션, 자체 브랜드 품질 같은 더 중요한 자산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 고객 입장에서는 필요한 상품 중심의 체감 혜택이 크다.
- 이마트 입장에서는 방문 빈도와 장바구니 규모를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
- 브랜드 관점에서는 ‘이마트에 가면 물가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약속을 다시 심는 장치가 된다.
- 다만 행사가 잦아질수록 가격 기대치가 올라가고 정상 판매의 설득력은 약해질 수 있다.
신상품을 끼워 넣는 방식도 영리했다
9월 고래잇 페스타에는 등심 탕수육 550g, 안유성 광주옥 들기름 메밀면 같은 단독·신상품도 들어갔습니다. 각각 행사카드 결제 시 6980원, 3980원으로 제시됐는데, 이건 단순히 싸게 파는 전략과 조금 다릅니다. 고객이 할인 때문에 매장에 들어왔을 때, 이마트만의 상품을 경험하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대형마트가 온라인 커머스와 싸울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굳이 매장에 가야 하는 이유’를 만드는 겁니다. 생필품 가격만으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발견하는 델리, 단독 기획 상품, 제철 신선식품이 중요해집니다. 고래잇은 가격으로 사람을 부르고, 상품 경험으로 다음 방문의 이유를 남기려는 캠페인에 가깝습니다.
이마트가 정말 회복하고 싶은 것
저는 고래잇을 보면서 이마트가 회복하고 싶은 건 단순한 매출이 아니라 ‘마트다운 신뢰’라고 느꼈습니다. 대형마트의 본업은 결국 좋은 상품을 적절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입니다. 너무 당연해서 잊히기 쉽지만, 이 약속이 흔들리면 브랜드는 빠르게 약해집니다.
9월 고래잇은 화려한 광고 캠페인이라기보다 본업 선언에 가깝습니다. 신선식품을 앞세우고, 생활필수품을 넓게 깔고, 행사 요일까지 바꾸며 고객의 체감 폭을 키웠습니다. 여기에는 “다시 이마트를 장 보는 곳으로 기억해 달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물론 할인만으로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객이 물가에 예민한 시기에는 가격도 분명한 브랜드 언어가 됩니다. 중요한 건 다음입니다. 고래잇이 매달 큰 소리로 싸다고 외치는 행사에 머물지, 아니면 이마트가 고객 생활을 실제로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로 쌓일지. 저는 그 차이가 앞으로의 이마트 브랜드를 꽤 선명하게 가를 거라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