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학과를 나온 후배들을 만나봤더니, 진짜 차이는 수업 밖에서 났다

얼마 전 브랜드 리뉴얼 프로젝트 회의에서 마케팅학과 출신 신입 기획자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적이 있습니다. 첫인상은 꽤 교과서적이었어요. STP, 4P, 브랜드 포지셔닝 같은 단어를 정확히 쓰더군요. 그런데 회의가 30분쯤 지나자 진짜 실력이 보였습니다. 단어를 아는 사람과 시장을 읽는 사람은 생각보다 빨리 갈립니다.
저는 12년 동안 여러 브랜드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조용한 퇴장을 옆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마케팅학과를 이야기할 때도 단순히 취업이 잘된다, 광고회사에 간다, 이런 식으로만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케팅은 멋진 카피를 쓰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브랜드가 고객에게 어떤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실제 경험으로 지켜내는지 설계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마케팅학과에서 배우는 것과 현장에서 쓰이는 것
마케팅학과 커리큘럼을 보면 소비자행동, 시장조사, 브랜드관리, 광고론, 디지털마케팅, 유통관리 같은 과목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름만 보면 꽤 실무적입니다. 실제로도 기본기는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특히 소비자행동과 시장조사는 나중에 브랜드 기획을 할 때 계속 돌아오게 되는 과목입니다.
근데 현장에서는 지식이 조금 다르게 쓰입니다. 예를 들어 수업에서는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설정했다고 말하면 끝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바로 질문이 이어집니다. 같은 20대 여성이라도 첫 월급을 받기 전인지, 자취를 하는지, 부모와 사는지, 평일 저녁을 어디서 보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 차이를 못 보면 타깃은 숫자일 뿐이고, 브랜드 메시지는 공중에 뜹니다.
실제로 한 뷰티 브랜드 프로젝트에서 25~34세 여성을 핵심 고객으로 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너무 넓었습니다. 데이터를 다시 쪼개보니 구매 전환율이 높은 그룹은 ‘피부 고민을 해결하고 싶지만 병원 시술은 아직 부담스러운 직장인’에 가까웠습니다. 이 한 문장으로 제품 설명, 모델 이미지, 상세페이지 톤, 체험단 운영 방식이 모두 바뀌었습니다. 마케팅학과에서 배우는 세분화가 현장에서 이런 식으로 살아납니다.
좋은 마케터는 유행보다 맥락을 봅니다
요즘 학생들이 가장 많이 관심 갖는 분야는 아무래도 디지털마케팅일 겁니다. 퍼포먼스 광고, 인스타그램, 틱톡, CRM, 검색 광고, 콘텐츠 마케팅까지 배울 것도 많고 바뀌는 속도도 빠릅니다. 솔직히 실무자도 잠깐 놓치면 낯선 용어가 쌓입니다.
그런데 채널보다 중요한 건 맥락입니다. 어떤 브랜드는 숏폼 하나로 급성장하지만, 어떤 브랜드는 같은 방식으로 돈만 쓰고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 먹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유행하는 문법이 그 브랜드의 약속과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프리미엄 생활용품 브랜드가 너무 가벼운 밈 콘텐츠를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조회수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댓글도 꽤 달렸죠. 하지만 매출 페이지로 넘어온 고객의 체류 시간이 짧아졌고, 기존 고객 설문에서는 ‘브랜드가 갑자기 싸 보인다’는 반응이 늘었습니다. 광고 효율만 보면 성공처럼 보였지만, 브랜드 자산 관점에서는 손해가 섞여 있었습니다.
마케팅학과에서 배우는 브랜드관리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브랜드는 매번 웃기고, 빠르고, 튀어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고객이 기대하는 일관된 감각을 계속 쌓아야 합니다. 때로는 클릭을 덜 받아도 지켜야 할 톤이 있습니다.
취업을 생각한다면 포트폴리오의 방향이 달라야 합니다
마케팅학과 학생들이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결과물을 예쁘게만 보여주는 겁니다. 카드뉴스 디자인, 광고 카피, 캠페인 콘셉트가 보기 좋게 정돈되어 있으면 당연히 인상은 좋습니다. 하지만 면접에서 더 오래 남는 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입니다.
브랜드 실무에서는 아이디어보다 판단의 근거가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신입 포트폴리오를 볼 때 이런 흐름이 있는지 먼저 봅니다.
- 어떤 시장 문제를 발견했는지
- 그 문제가 실제 고객 행동과 연결되는지
- 경쟁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빈자리가 무엇인지
- 왜 그 메시지와 채널을 선택했는지
- 성과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예를 들어 “MZ세대를 타깃으로 캠페인을 기획했습니다”라는 문장은 너무 흔합니다. 반면 “가격 민감도는 높지만 실패 비용을 줄이고 싶어 리뷰를 오래 보는 20대 초반 고객을 겨냥했습니다”라고 말하면 훨씬 선명합니다. 같은 학생 프로젝트라도 후자는 실제 기획자처럼 보입니다.
성과 숫자가 꼭 거창할 필요도 없습니다. 동아리 계정 도달률이 30% 올랐다거나, 설문 응답 120개를 바탕으로 메시지를 바꿨다거나, A안과 B안의 저장률 차이를 비교했다는 정도도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중요한 건 숫자를 장식으로 쓰지 않는 태도입니다.
마케팅학과의 장점은 넓고,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마케팅학과의 장점은 진로가 넓다는 점입니다. 브랜드 매니저, 콘텐츠 마케터, 퍼포먼스 마케터, CRM 담당자, 상품기획자, 리서처, 광고기획자 등 갈 수 있는 길이 많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넓음이 위험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저것 다 조금씩 아는데, 무엇으로 자신을 설명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기 쉽거든요.
현장에서 보면 강한 주니어는 방향이 있습니다. 숫자에 강한 사람, 고객 인터뷰를 잘하는 사람, 카피 감각이 좋은 사람, 트렌드를 구조화하는 사람, 실행 속도가 빠른 사람. 처음부터 완성형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장점이 어떤 마케팅 역할과 연결되는지 정도는 빨리 찾아야 합니다.
브랜드는 결국 선택의 결과입니다. 누구에게 팔 것인지,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어느 채널에서 어떤 말투로 등장할 것인지. 마케팅학과도 비슷합니다. 넓게 배우되,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무기를 좁혀야 합니다. 그때부터 전공 이름이 스펙이 아니라 실력이 됩니다.
제가 본 좋은 마케터들은 대체로 화려한 답을 빨리 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고객의 말과 숫자 사이에서 이상한 부분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케팅학과를 선택한다는 건 광고를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 사람이 왜 사고 왜 떠나는지 집요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갖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그 습관이 있는 사람은 어떤 채널이 유행하든 브랜드가 해야 할 약속을 조금 더 정확히 찾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