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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대행사를 12년간 써봤더니, 좋은 회사는 제안서가 아니라 질문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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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대행사를 12년간 써봤더니, 좋은 회사는 제안서가 아니라 질문이 달랐다

처음 만난 대행사가 화려할수록 더 조심하게 됐다

얼마 전 지인이 새 브랜드 론칭을 앞두고 마케팅대행사 제안서를 몇 개 보여줬는데, 이상하게도 12년 전 제가 처음 봤던 제안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장 분석, 타깃 정의, 퍼널 전략, 콘텐츠 캘린더, 예상 성과. 페이지는 반짝였고 단어는 세련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브랜드가 고객에게 어떤 약속을 하고 있는지 묻는 질문은 거의 없었습니다.

브랜드 일을 오래 하다 보면 광고비를 태워서 숫자를 올리는 일과, 브랜드가 오래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전혀 다르다는 걸 자주 봅니다. 마케팅대행사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잘 만나면 성장의 속도를 올려주지만, 잘못 만나면 브랜드의 방향감각을 흐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특히 초기 브랜드는 대행사를 선택할 때 ‘누가 더 많이 해봤나’보다 ‘우리의 약속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는가’를 봐야 합니다. 매출 10억 브랜드와 100억 브랜드는 필요한 마케팅 언어가 다릅니다. 같은 ROAS 300%라도 어떤 브랜드에는 생존 신호이고, 어떤 브랜드에는 장기적으로 위험한 할인 의존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성과를 잘 내는 대행사는 숫자보다 맥락을 먼저 본다

좋은 마케팅대행사는 첫 미팅에서 광고 매체부터 꺼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귀찮을 정도로 묻습니다. 왜 이 제품을 만들었는지, 고객이 처음 샀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라는지, 재구매가 일어나는 순간은 언제인지, 가격을 내리지 않고 팔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같은 질문입니다.

제가 봤던 한 생활용품 브랜드는 월 광고비 3천만 원을 쓰고도 매출이 제자리였습니다. 이전 대행사는 소재를 주 20개씩 바꾸고, 타깃을 세분화하고, 랜딩페이지 버튼 색까지 바꿨습니다. 그런데 실제 문제는 제품 설명이었습니다. 브랜드는 ‘친환경’을 말하고 있었지만 고객 리뷰에서는 ‘냄새가 덜 난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약속과 구매 이유가 어긋나 있었던 겁니다.

새 대행사는 광고 세팅보다 메시지부터 바꿨습니다. 친환경을 버린 게 아니라, 고객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사용 장면을 앞에 세웠습니다. 6주 뒤 클릭률은 약 1.7배, 구매 전환율은 30% 가까이 올랐습니다. 대단한 매체 비법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고객이 이미 말하고 있던 이유를 브랜드가 늦게 들은 것뿐입니다.

나쁜 대행사는 브랜드를 캠페인 단위로만 본다

반대로 위험한 마케팅대행사는 모든 문제를 캠페인으로 풉니다. 매출이 떨어지면 프로모션, 반응이 낮으면 숏폼, 인지도가 부족하면 인플루언서. 물론 전부 필요한 카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카드가 많다고 전략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한 패션 브랜드는 1년 동안 거의 매달 기획전을 했습니다. 봄맞이, 장마, 휴가, 개강, 블랙프라이데이, 연말. 매출 그래프는 행사 기간마다 튀었지만 객단가는 계속 내려갔고, 정가 구매 비중은 20%대까지 떨어졌습니다. 고객은 브랜드를 좋아해서 산 게 아니라 기다리면 싸지는 곳으로 학습했습니다. 이건 광고 실패보다 더 무섭습니다. 브랜드의 약속이 ‘취향’에서 ‘할인’으로 바뀌는 순간이니까요.

대행사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많은 대행사는 요청받은 일을 빠르게 해냅니다. 문제는 브랜드 쪽이 스스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행사에게 성과만 요구할 때 생깁니다. 그러면 대행사는 가장 빠르게 보이는 숫자를 만들고, 브랜드는 그 숫자에 익숙해집니다.

좋은 마케팅대행사를 고를 때 제안서보다 봐야 할 것

제안서는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성공 사례도 대체로 멋지게 포장됩니다. 그래서 저는 제안서보다 미팅의 질문, 실패 사례를 말하는 방식, 그리고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용기를 봅니다. 진짜 경험이 있는 대행사는 모든 업종을 다 잘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산이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하고, 브랜드 메시지가 흐리면 광고 전에 그 부분을 손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 첫째, 우리 브랜드의 고객 언어를 얼마나 빨리 파악하는지 봐야 합니다.
  • 둘째, 매체 운영보다 메시지와 오퍼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셋째, 단기 성과와 장기 브랜드 훼손 가능성을 함께 말해야 합니다.
  • 넷째, 성공 사례만큼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배운 점을 구체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대행사를 고르는 일은 파트너를 고르는 일에 가깝습니다. 광고 계정을 잘 만지는 능력은 기본입니다. 거기에 브랜드가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고, 어디부터는 절대 흐려지면 안 되는지 같이 판단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콘텐츠 속도가 빠른 시장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빠른 실행은 중요하지만, 빠르게 틀린 방향으로 가는 것도 가능하니까요.

브랜드가 먼저 준비해야 대행사도 제대로 일한다

마케팅대행사를 잘 쓰는 브랜드는 대행사에게 모든 답을 맡기지 않습니다. 최소한 세 가지는 내부에서 붙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팔고 싶은지, 고객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고 싶은지, 매출을 위해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는지. 이 세 가지가 흐리면 대행사는 계속 실행안을 바꾸게 되고, 브랜드는 계속 ‘이번엔 될까’ 하는 마음으로 보고서를 기다리게 됩니다.

대행사는 브랜드의 외부 엔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핸들은 브랜드가 잡아야 합니다. 12년 동안 여러 브랜드를 보며 느낀 건, 오래 가는 브랜드일수록 광고를 덜 믿는다는 점입니다. 광고를 안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광고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합니다. 마케팅대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파트너는 브랜드를 대신해 약속을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대신 그 약속이 고객에게 더 선명하게 닿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저는 대행사를 찾는 브랜드에게 늘 비슷한 말을 합니다. 제안서의 화려함보다 회의가 끝난 뒤 남는 질문을 보라고요. 좋은 질문을 받은 브랜드는 잠깐 불편해집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을 지나야 브랜드가 진짜로 팔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때부터 마케팅은 비용이 아니라 방향을 가진 투자에 가까워집니다.

마케팅대행사를 12년간 써봤더니, 좋은 회사는 제안서가 아니라 질문이 달랐다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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