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즈 넬라 베이지가 ‘꾸안꾸 렌즈’로 팔리는 진짜 이야기

얼마 전 올리브영 근처를 지나가다 렌즈 매장 앞에서 한참 멈춰 선 적이 있습니다. 진열대에는 그레이, 올리브, 초코, 브라운이 빽빽했는데 이상하게 손이 가는 건 튀는 컬러보다 ‘베이지’ 쪽이더군요. 특히 오렌즈 넬라 베이지, 정확히는 넬라 애쉬베이지는 요즘 컬러렌즈 시장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꽤 잘 보여주는 제품입니다.
브랜드를 12년쯤 보다 보면 제품 하나에도 약속이 보입니다. 이 렌즈가 하는 약속은 단순해요. “눈동자를 바꾸겠습니다”가 아니라 “원래 예쁜 눈처럼 보이게 하겠습니다”에 가깝습니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오렌즈 넬라 베이지는 왜 과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컬러렌즈 시장은 한동안 ‘확실한 변화’가 미덕이었습니다. 직경은 커지고, 테두리는 또렷해지고, 컬러는 사진에서 바로 보일 만큼 강해야 했죠.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메이크업도 베이스는 얇게, 립은 혈색처럼, 헤어 컬러도 애쉬와 베이지 계열로 자연스럽게 빠졌습니다. 렌즈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오렌즈 넬라 베이지가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입니다. 베이지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 인상은 노란빛이 강한 베이지보다 살짝 식힌 애쉬 베이지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웜톤 메이크업에만 붙는 제품이 아니라, 쿨한 음영 메이크업이나 회색빛 브라운 섀도에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공식몰 기준 넬라 라인은 원데이 애쉬베이지, 애쉬그레이, 애쉬올리브와 먼슬리 제품으로 나뉘어 노출됩니다. 원데이는 10개입 2만 원대, 먼슬리는 2개입 2만5천 원대 상품으로 운영되는 편입니다. 가격대만 보면 ‘입문형 데일리 렌즈’와 ‘한 달 분위기템’ 사이를 동시에 잡으려는 구성이죠.
제품보다 먼저 판 것은 ‘덜 티 나는 분위기’였다
사실 오렌즈가 잘한 건 렌즈 자체보다 언어 선택입니다. ‘베이지’ 앞에 ‘애쉬’를 붙인 순간, 이 제품은 단순한 밝은 렌즈가 아니라 톤을 낮춘 무드 렌즈가 됩니다. 브랜드 입장에서 이름은 포장지가 아니라 약속의 첫 문장입니다.
넬라 베이지가 주는 이미지는 대략 이렇습니다.
- 또렷한 서클렌즈보다 부드러운 인상
- 갈색 렌즈보다 한 톤 밝고 세련된 눈빛
- 그레이 렌즈보다 일상 착용 부담이 낮은 컬러
- 셀카에서는 변화가 보이지만 실물에서는 과하지 않은 정도
이건 꽤 영리한 포지셔닝입니다. 컬러렌즈를 처음 사는 사람은 너무 티 나는 제품을 무서워합니다. 반대로 렌즈를 자주 사는 사람은 무난한 브라운만 계속 사는 게 지루합니다. 넬라 베이지는 이 두 사람 사이에 서 있습니다. ‘처음인데 실패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익숙한데 조금 바꾸고 싶은 사람’을 같이 데려오는 제품인 셈입니다.
뉴진스 이후, 오렌즈가 얻은 건 모델 이상의 신뢰였다
오렌즈를 이야기할 때 뉴진스 협업을 빼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유명 모델을 쓰면 인지도는 올라갑니다. 그런데 브랜드 마케팅 관점에서 더 중요한 건 모델의 유명세가 아니라 모델이 제품의 약속을 설명해주느냐입니다.
뉴진스가 가진 이미지는 과한 완성형보다 자연스러운 생기,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분위기에 가깝습니다. 오렌즈의 여러 라인 중 넬라 베이지 같은 제품은 그 이미지와 궁합이 좋습니다. 강한 변신보다 ‘원래 그런 눈빛’처럼 보이는 쪽이니까요.
여기서 운도 작용했습니다. 만약 같은 제품이 몇 년 전 진한 음영 메이크업과 큰 직경 렌즈가 유행하던 시기에 나왔다면 지금만큼 설득력이 없었을 수 있습니다. 제품은 그대로여도 시장의 기분이 달라지면 성공 확률이 달라집니다. 브랜드 실무에서 자주 보는 장면입니다. 좋은 제품이 항상 이기는 게 아니라, 시대가 그 제품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더 잘 팔립니다.
넬라 베이지의 강점과 약점은 같은 곳에 있다
오렌즈 넬라 베이지의 장점은 자연스러움입니다. 그런데 약점도 자연스러움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티가 덜 난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데일리 렌즈를 찾는 사람에게는 이 덜함이 장점이 됩니다.
이런 제품은 상세 페이지에서 과장하면 손해입니다. “완전히 다른 눈빛” 같은 표현보다 “빛에 따라 은은하게 올라오는 베이지 무드”에 가까운 설명이 더 맞습니다. 기대치를 정확히 맞춰야 재구매가 생깁니다. 브랜드가 약속을 크게 잡으면 첫 구매는 만들 수 있어도 두 번째 구매에서 흔들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제품을 ‘사진용 렌즈’보다 ‘일상용 분위기 렌즈’로 보는 편이 맞다고 봅니다. 친구를 만날 때, 출근 메이크업에 살짝 힘을 줄 때, 머리색을 애쉬 브라운이나 카키 브라운으로 바꿨을 때 조용히 어울리는 타입입니다. 렌즈 하나로 얼굴 전체가 달라지는 제품이라기보다, 전체 톤을 반 톤 세련되게 밀어주는 제품에 가깝습니다.
브랜드가 오래 가려면 이런 제품이 필요하다
히트 상품은 보통 크게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시장을 시끄럽게 만드는 제품이고, 다른 하나는 조용히 장바구니에 반복해서 들어가는 제품입니다. 오렌즈 넬라 베이지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엄청난 화제성보다 ‘실패 확률이 낮은 선택지’라는 감각을 팝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런 제품이 꽤 소중합니다. 광고 한 번으로 반짝 팔리는 제품보다, 고객의 화장대 안에서 루틴이 되는 제품이 더 오래 남습니다. 특히 컬러렌즈처럼 착용감, 직경, 컬러감, 가격이 모두 재구매에 영향을 주는 카테고리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오렌즈 넬라 베이지가 완벽한 제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제품은 요즘 소비자가 원하는 ‘예뻐 보이되 들키고 싶지는 않은 마음’을 정확히 건드립니다. 브랜드가 약속을 잘 잡으면 제품은 더 비싸 보이고, 소비자는 자기 취향을 설명하기 쉬워집니다. 저는 넬라 베이지가 바로 그 지점에서 꽤 좋은 답을 낸 제품이라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