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백화점 출차 혼란을 보며 떠올린 약속

얼마 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출차 소식을 읽다가 쇼핑한 물건보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오래 기억에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18일 일요일, 갑작스러운 폭우와 반포 일대 교통 정체가 겹치면서 강남점 지하 주차장의 차량 출차가 크게 지연됐다. 연합뉴스 취재에서 한 고객은 오후 4시 40분부터 약 5시간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모든 고객이 그만큼 기다렸다는 뜻은 아니지만, 한 사람에게 5시간은 쇼핑의 여운을 지우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고객이 산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백화점은 상품을 파는 곳이면서 시간을 편하게 쓰게 해주는 곳이다. 좋은 물건을 보고, 식사를 하고, 주차한 차로 무사히 돌아가는 과정까지 고객은 하나의 방문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강남점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형 점포라면 고객이 기대하는 편리함의 기준도 높다. 매장 안에서 받은 세심한 응대가 출구 앞 긴 대기 속에서 희미해지는 이유다.
브랜드 마케팅을 하며 자주 본 장면이 있다. 회의실에서는 구매 순간을 고객 경험의 중심에 놓지만, 고객은 귀가한 뒤에야 그날 방문을 평가한다. 출차는 거래가 끝난 뒤의 부속 절차처럼 보이기 쉽다. 그런데 아이를 태운 차가 움직이지 않고, 언제 나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면 고객에게 가장 절실한 서비스는 새 상품 안내가 아니라 지금 상황을 설명해 주는 일이다.
폭우는 변수였지만 기다림의 방식은 브랜드가 만든다
이번 일을 백화점 주차장만의 문제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신세계 측은 주말 방문객이 몰린 데다 갑자기 비가 와 주변 도로가 심하게 막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바깥 도로가 막히면 주차장 안에서 차량을 빠르게 내보내기도 어렵다. 날씨와 도로 사정에는 운영자가 통제할 수 없는 몫이 있다. 운이 나빴던 날이라는 설명이 성립하는 이유다.
다만 고객이 체감하는 혼란에는 다른 층위가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백화점은 오후 5시께부터 출차를 제한했고, 주변 도로 정체로 출차가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을 반복했다. 이때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는 원인에 더해 지금 차에서 기다려야 하는지, 안전하게 차를 두고 이동할 수 있는지, 다음 안내는 언제 나오는지다. 같은 30분을 기다려도 선택지가 보이는 30분과 끝을 알 수 없는 30분은 전혀 다르다. 현장에서 각 안내가 얼마나 전달됐는지는 별개로 확인해야겠지만, 브랜드가 설계해야 할 부분은 바로 그 차이다.
주차요금 면제보다 먼저 필요한 것
백화점은 차량을 두고 다음 날 출차하는 고객에게 추가 주차요금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돈을 더 받지 않는 것과 이미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주는 것은 다르다. 어떤 고객에게는 차를 두고 대중교통으로 돌아가는 선택이 가능했을 것이다. 어린아이와 짐이 있는 고객에게는 그 선택도 쉽지 않았을 수 있다. 같은 안내 하나를 모든 사람에게 건네는 방식으로는 불편의 크기를 다 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브랜드가 보여줄 수 있는 역량은 의외로 화려하지 않다. 주차장 층마다 같은 내용을 알리고, 안내 시각을 명확히 말하고, 이동이 어려운 고객에게 도움을 연결하는 일이다. 도로 상황을 확인하는 팀과 현장 안내팀의 정보가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이번 현장에서 모두 시행됐거나 빠졌다고 단정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음 혼잡 상황을 준비한다면 고객이 실제로 기다리는 자리에서 점검해야 할 항목들이다.
브랜드의 약속은 출구에서 시험받는다
강남 백화점 출차 혼란을 보며 떠오른 건 광고 문구보다 운영의 순서였다. 평소에는 좋은 입점 브랜드와 근사한 공간이 방문 이유가 된다. 예상 밖의 일이 생기면 고객은 다른 것을 본다.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얼마나 빨리 알렸는지, 자신에게 가능한 선택을 설명했는지, 가장 불편한 사람을 먼저 살폈는지다.
이번 폭우를 백화점이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고객의 기억까지 날씨에 맡길 필요는 없다. 고객이 차를 몰고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책임지는 태도, 나는 그게 백화점이 말하는 편안함을 가장 설득력 있게 증명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