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더스가 코스트코 옆에서 살아남은 진짜 이야기

처음 트레이더스를 봤을 때, 이상하게 애매했다
얼마 전 트레이더스 매장에 갔다가 계산대 앞에서 꽤 오래 줄을 섰습니다. 카트에는 생수, 고기, 냉동피자, 세제처럼 ‘당장 필요하지만 들고 가기엔 무거운 것들’이 가득했죠. 그 장면을 보면서 예전 생각이 났습니다. 트레이더스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업계 안에서는 이런 말이 많았습니다. “이거 코스트코 따라 하는 거 아닌가?”
사실 그렇게 보일 만했습니다. 창고형 매장, 높은 천장, 팔레트 진열, 대용량 상품. 겉모습만 보면 이미 강력한 선수가 있던 시장에 후발주자가 들어온 셈이었죠. 그런데 트레이더스는 묘하게 다른 길을 골랐습니다. 코스트코가 ‘회원만 들어오는 클럽’의 느낌이라면, 트레이더스는 오랫동안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창고형 매장’이라는 약속을 내세웠습니다.
브랜드 기획자 입장에서 이 선택은 꽤 흥미롭습니다. 보통 후발 브랜드는 선도 브랜드의 강점을 빨리 복제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트레이더스는 가장 눈에 띄는 제도, 그러니까 유료 회원제부터 다르게 가져갔습니다. 이건 단순한 운영 정책이 아니라 브랜드의 첫 약속이었습니다. “부담 없이 들어와서, 많이 사면 확실히 싸다.” 이 문장이 초창기 트레이더스의 포지션을 만들었습니다.
트레이더스의 성장은 ‘멋’보다 ‘계산’에 가까웠다
트레이더스 1호점은 2010년 구성점에서 시작했습니다. 신세계그룹 뉴스룸에 따르면 구성점은 트레이더스로 바뀐 뒤 10년 사이 매출이 4배 이상 커졌고, 2020년에는 연 매출 2천억 원 돌파가 언급됐습니다. 1호점 하나의 성공이 아니라, 포맷 자체가 먹힌 겁니다.
왜 먹혔을까요. 저는 트레이더스의 초반 성장을 ‘고급스러운 브랜드 경험’보다 ‘생활비 계산서’의 승리로 봅니다. 대용량, 낮은 단위 가격, 신선식품 강화, 이마트가 가진 구매력. 이 네 가지가 한국 소비자의 장보기 습관과 맞았습니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는 창고형 매장이 단순히 공산품 박스를 싸게 사는 공간으로만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장을 보는 사람들은 고기, 과일, 회, 즉석식품까지 한 번에 봅니다. 트레이더스는 이 지점을 꽤 잘 잡았습니다.
상품 수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창고형 할인점은 원래 모든 걸 파는 곳이 아닙니다. 많이 팔릴 것만 남기고, 회전율을 높이고, 그 힘으로 가격을 낮춥니다. 선택지를 줄이는 대신 가격과 양으로 보상하는 구조죠. 소비자는 매장 안에서 오래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싸네”라고 느끼는 순간 카트에 넣습니다. 브랜드 경험이 감성이 아니라 속도와 금액으로 만들어지는 시장입니다.
그런데 2022년에 약속이 바뀌었다
트레이더스의 큰 전환점은 2022년입니다. 이름을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으로 바꾸고, 유료 멤버십을 도입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긴장이 생깁니다. 트레이더스가 오래 쌓아온 약속은 열린 매장이었는데, 새 이름에는 ‘클럽’이 들어갔습니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지만, 더 좋은 혜택은 회원에게 준다는 구조가 된 겁니다.
이건 브랜드 관점에서 꽤 어려운 수술입니다. 기존 고객은 “여기 원래 그냥 갈 수 있어서 좋았는데”라고 느낄 수 있고, 신규 고객은 “그럼 코스트코랑 뭐가 달라?”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트레이더스는 완전한 폐쇄형 회원제로 가지 않았습니다. 입장은 열어두되, 멤버십 가격과 적립, 전용 할인으로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약속을 버린 게 아니라 약속 위에 층을 하나 얹은 셈입니다.
초기 반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마트 발표 기준으로 멤버십을 시작한 뒤 2022년 10월부터 두 달간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4.2% 늘었고, 멤버십 회원 객단가도 21% 증가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회원제 실험’은 고객의 장바구니를 키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코스트코와 싸운 게 아니라, 옆자리를 만든 브랜드
트레이더스를 이야기할 때 코스트코를 빼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두 브랜드를 단순히 승패로 보면 시장을 놓칩니다. 코스트코는 강력한 글로벌 소싱, 커클랜드 같은 PB, 회원제의 희소성으로 움직입니다. 트레이더스는 이마트라는 국내 유통망, 신선식품 이해도, 접근성, 열린 매장 경험으로 움직였습니다.
둘의 차이는 고객의 마음속 사용 장면에서도 갈립니다. 코스트코는 일부 고객에게 ‘날 잡고 가는 쇼핑 이벤트’에 가깝습니다. 트레이더스는 상대적으로 ‘마트 가는 김에 크게 사는 선택지’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트레이더스도 클럽 이미지를 강화했지만, 출발점이 달랐기 때문에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온도도 다릅니다.
- 코스트코: 회원제 기반의 강한 독점감
- 트레이더스: 접근성 높은 창고형 장보기
- 공통점: 대용량, 낮은 단위 가격, PB 경쟁력
- 차이점: 폐쇄성과 개방성의 균형
브랜드는 늘 경쟁자를 닮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오래 버티는 브랜드는 닮는 지점보다 달라지는 지점을 더 집요하게 관리합니다. 트레이더스가 국내 창고형 할인점 시장에서 존재감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코스트코의 문법을 빌렸지만, 한국식 장보기의 불편함과 계산법에 맞게 다시 조립했습니다.
트레이더스가 앞으로 잃지 말아야 할 것
2024년에도 트레이더스는 고물가 흐름 속에서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이마트 발표 기준 2024년 1~2월 트레이더스 매출은 6,336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3% 증가했습니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자는 더 냉정해집니다. 브랜드 호감보다 영수증을 먼저 봅니다. 이때 트레이더스 같은 브랜드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위험도 있습니다. 창고형 할인점의 매력은 ‘많이 사면 확실히 이득’이라는 단순한 믿음에서 나옵니다. 멤버십, PB, 전용 할인, 행사 구조가 너무 복잡해지면 소비자는 피곤해집니다. 싸게 샀다는 감각이 계산기를 두드려야만 확인된다면, 브랜드의 약속은 흐려집니다.
트레이더스가 잘한 건 광고 카피보다 운영의 약속을 분명히 만든 일이었습니다. 큰 카트에 담는 순간 소비자가 스스로 납득하게 만드는 것. 그게 이 브랜드의 진짜 자산입니다. 앞으로도 트레이더스가 강하려면 멋진 클럽처럼 보이는 것보다, 계산대 앞에서 “그래도 여기 오길 잘했다”는 감각을 계속 남겨야 합니다. 브랜드의 힘은 결국 로고가 아니라, 영수증을 본 뒤에도 배신당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데서 생기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