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쫀득볼 논란을 보며 떠올린, 작은 칼집 하나가 브랜드를 흔든 이야기

얼마 전 편의점 신상 과자를 보다가 베리쫀득볼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사실 제품 하나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는 일은 매주 생깁니다. 그런데 파리바게뜨 베리쫀득볼은 조금 달랐습니다. 맛이 이상해서도 아니고, 가격이 터무니없어서도 아니고, 광고 문구가 무리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아주 작은 형태였습니다. 빵 위에 난 칼집, 그리고 그 사이로 나온 딸기크림치즈가 예상하지 못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브랜드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장면이 제일 무섭습니다. 회의실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던 요소가 매장, 오븐, 사람 손, 소비자 카메라를 지나면서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베리쫀득볼은 그걸 꽤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베리쫀득볼은 원래 무엇을 약속한 제품이었나
파리바게뜨의 공식 제품 설명을 보면 베리쫀득볼은 딸기 풍미와 딸기크림치즈, 말랑하고 쫀득한 식감을 앞세운 작은 베이커리 제품입니다. 총 내용량은 29g, 열량은 100kcal로 표기돼 있습니다. 밀, 우유, 계란, 대두 알레르기 정보도 함께 안내돼 있고요.
이 스펙만 놓고 보면 제품의 의도는 꽤 명확합니다. 무거운 디저트가 아니라 가볍게 집어 먹는 시즌성 딸기 간식. 이름도 어렵지 않습니다. 베리, 쫀득, 볼. 소비자가 기대하는 건 분홍빛 필링, 귀여운 크기, 쫀득한 식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건 약속입니다. 파리바게뜨는 매장 접근성이 큰 브랜드입니다. 소비자는 대단한 미식 경험보다 안정적인 맛, 무난한 외형, 실패 확률이 낮은 선택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베리쫀득볼은 이 무난함의 영역에서 벗어나 버렸습니다. 제품의 맛보다 먼저 모양이 말을 걸었고, 그 말투가 브랜드가 의도한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논란은 왜 이렇게 빨리 번졌을까
2026년 1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베리쫀득볼 사진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일부 매장에서 나온 제품 모양이 여성 신체 부위를 연상시킨다는 반응이 붙었고, 여러 매체가 이를 보도했습니다. 아시아경제, 서울신문, 이데일리 등의 보도에 따르면 문제로 지적된 형태는 둥근 반죽 위 칼집 사이로 딸기크림치즈가 새어 나오며 만들어졌습니다.
이건 단순한 조롱거리로만 볼 일이 아닙니다. 소비자 반응이 빨랐던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 첫째, 제품 자체가 작고 단순해서 시각적 인상이 바로 소비 경험이 됐습니다.
- 둘째, 딸기크림치즈의 색과 질감이 사진에서 강하게 읽혔습니다.
- 셋째, 매장별 제조 편차가 생기기 쉬운 제품 구조였습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매뉴얼상 완제품은 의도한 모양이 있었고, 모든 제품이 같은 논란을 만든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소비자는 매뉴얼을 보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진열대 위 제품과 누군가 올린 사진을 봅니다. 브랜드가 의도한 원본보다 소비자가 공유한 이미지가 더 빨리 진짜가 되는 시대입니다.
작은 공정 하나가 브랜드 경험을 바꾼다
이 사례에서 제가 가장 눈여겨본 건 파리바게뜨의 후속 대응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파리바게뜨는 2026년 1월 21일 생산분부터 베리쫀득볼 제조 공정에서 냉동 반죽에 칼집을 내는 작업을 제외하도록 점포에 공지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현장의 작업 불편, 작업 안정성, 생산 효율화가 이유로 언급됐습니다.
솔직히 브랜드 실무자 입장에서 보면 이 판단은 꽤 현실적입니다. 논란을 키우며 해명전으로 끌고 가기보다, 문제가 되는 형태를 만드는 공정을 없애는 쪽이 빠릅니다. 소비자는 긴 설명보다 바뀐 제품을 더 빨리 받아들입니다. 특히 베이커리처럼 매일 생산되고 매일 진열되는 상품은 말보다 진열대가 먼저 사과합니다.
다만 여기서 배울 점도 분명합니다. 시즌 제품은 속도가 생명입니다. 딸기 시즌, 쫀득 디저트 유행, 두바이 쫀득 쿠키 이후의 식감 트렌드까지 이어 붙이면 출시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속도가 빠를수록 검수는 더 입체적이어야 합니다. 제품 사진, 매장 매뉴얼, 실제 제조 편차, 소비자 촬영 각도까지 봐야 합니다. 예전에는 브랜드가 광고컷을 통제하면 됐지만, 이제는 소비자 사진이 광고컷보다 더 많이 유통됩니다.
맛보다 먼저 모양이 팔리는 시대
베리쫀득볼 논란을 보며 떠오른 브랜드가 몇 개 있습니다. 크리스피크림은 도넛의 윤기와 원형 자체가 제품 경험입니다. 탕후루는 맛보다 꼬치에 꽂힌 과일의 빛깔이 먼저 팔렸습니다. 두바이 초콜릿류 제품도 단면 사진이 없으면 매력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요즘 디저트는 혀보다 카메라를 먼저 통과합니다.
베리쫀득볼도 원래는 이 흐름 안에 있었습니다. 작고, 귀엽고, 자르면 필링이 보이고, 이름에 식감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카메라 친화적인 제품은 동시에 카메라 리스크도 큽니다. 소비자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순간과 민망하다고 느끼는 순간 사이가 생각보다 가깝습니다.
브랜드가 여기서 놓치기 쉬운 건 유머의 소유권입니다. 소비자가 브랜드와 함께 웃으면 바이럴이 됩니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두고 웃으면 리스크가 됩니다. 베리쫀득볼은 후자에 가까운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제품명이 귀엽고 맛 설명이 좋아도, 이미지가 먼저 밈이 되면 브랜드가 대화를 끌고 가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 사건이 꼭 실패만은 아닌 이유
저는 베리쫀득볼을 단순한 실패 사례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 사건은 요즘 브랜드 운영의 민낯을 잘 보여줍니다. 브랜드는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는 본사 기획, 공장 생산, 매장 조리, 현장 숙련도, 소비자 촬영이 한 제품 안에 겹칩니다. 어느 한 지점에서 작은 오차가 생기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좋은 브랜드는 논란이 없어서 좋은 게 아닙니다. 논란이 생겼을 때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설명하지 않을지 판단할 줄 아는 브랜드가 오래 갑니다. 베리쫀득볼의 공정 변경은 그런 점에서 꽤 실무적인 대응이었습니다. 크게 싸우지 않고, 소비자가 문제로 느낀 시각 요소를 빠르게 제거했으니까요.
브랜드 기획자로 12년을 지켜보며 느낀 건 하나입니다. 소비자는 브랜드의 의도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자신이 마주친 결과물을 평가합니다. 그래서 브랜드의 약속은 기획서가 아니라 진열대에서 완성됩니다. 베리쫀득볼은 작은 빵 하나였지만, 브랜드가 약속한 귀여움과 실제 소비자가 본 이미지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생길 수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요즘 시장에서는 그 간격이 곧 뉴스가 되고, 밈이 되고, 때로는 공정 변경 사유가 됩니다.
